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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화가 특별전 그림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자유를 얻는 구족화가들의 이야기
이주희 미술평론가
LG유플러스는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지체장애인 임경식 작가가 U+AI스피커를 이용해 특별한 외출에 나서며 세상과 다시 소통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임경식 작가 외에도 우리의 주변에는 몸이 조금 불편하지만 굳은 의지와 용기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소통을 돕는 기술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에 활력을 전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도 있다. LG유플러스는 이같은 바람으로 2016년부터 소외계층, 특히 장애인의 일상 속 고충을 해결할 수 있는 “행복나라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AI와 IoT 서비스를 활용한 U+CSR캠페인은 기술이 사회 각층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전해주었고,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영상 속 주인공에 대하여 공감과 응원을 건넸다. 이와 더불어 LG유플러스는 U+CSR캠페인의 일환으로 임경식 작가를 비롯해 구족화가 5인의 특별전을 개최한다. 구족화가(작가)란 영상 속 임경식 작가처럼 선천적, 후천적으로 팔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입이나 발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을 말한다. 작가들은 신체적 조건으로 인해 차별을 감수해야 했던 삶의 과정을 오히려 삶에 대한 열정과 극복의지를 통해 그림으로 승화시켜왔다. 김명기 박정 박종관 오순이 임경식 5인의 작가에게 그림은 세상을 만나는 공간이자,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한한 자유를 얻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또한 성격은 다르지만 표현에 대하여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해온 작가들은 이미 구족화가가 아닌 전업 작가로서의 고민을 수행해 나가고 있다. 때문에 이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특별한 사람들의 그림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서의 감상과 미학적 접근을 시도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작품뿐만 아니라 구족화가들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끊임없이 주변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환원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회 속에서 한명의 개인이자 예술가로 거듭나기까지 주변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의 작품은 한 작가의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작가를 둘러싼 사회가 만들어낸 합작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수의 구족화가들이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 모습에는 감사의 마음이 담기기도 했지만 연민과 그리움이 담겨 있기도 하다. 자신들의 삶에 보내주었던 주변의 따듯한 관심과 시선을 작가들은 그림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환원에서 보다 큰 감동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의지와는 다르게 좋고 나쁨을 오고가는 신체를 돌보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이다. 입과 발이 부르트고 온몸이 뒤틀리는 통증과 마주해야하며 당장 자고 일어난 뒤 자신의 몸 상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은 한 인간에게도 예술가에게도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러나 구족화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수양적인 태도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전업 작가이지만 전력을 다해 작업에 매진할 수 없는 것도,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조바심을 견뎌내는 것도 그들이 극복해낸 작업의 과정이다. 고난마저도 깨달음과 초월의 기회로 삼는 그들은 어떤 면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U+CSR캠페인 같은 기술적 지원으로 구족화가들이 조금 더 그들의 문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란다. 또한 그림으로 무한한 창작 의지와 자유를 펼쳐낸 이번 〈구족화가 특별전〉을 통해 이들에 대한 따듯한 관심과 희망이 전해지기를, 편견과 한계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번 LG유플러스의 U+CSR캠페인과 더불어 사회와 기업이 공생하는 문화가 폭넓게 정착되길 바란다. 김명기 KIM MYEONG-KI 김명기 작가의 예명은 김밝은터이다. 사람들이 갈고리 손은 기억하는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작가가 스스로 지었다고 한다. 작가는 7살 되던 해 전기 감전으로 두 팔을 잃었다. 이후 병원을 오가다 초등학교를 9살에 입학한 뒤 중학교 진학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훗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송통신대학에 진학도 했지만 스무살이 되기까지 그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스무살에 만난 김용달 작가는 김밝은터 작가를 있게 한 스승이다. 김용달 작가는 대가 없이 가르침을 베풀었고 그렇게 시작된 사제 간의 인연이 벌써 40년을 넘었다. 스승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큰 가르침은 ‘마음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것이 나의 그림인지 고민해야 했고 곧 그의 ‘한’이자 ‘꿈’이 담긴 손은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한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기에 작가의 그림은 오히려 동화적이고 천진하다. 동화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절함과 더불어 약간의 경각심을 부르는 정도면 충분하다. 당연하지만 작가가 잃어보았기에 더욱 소중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자신이 지닌 불편을 경쾌하게 드러내는 정도이다. 김밝은터 작가의 그림에서 손의 형태는 빌딩과 다리 등 건축물의 모습이나 산과 들 자연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변화한 손들은 〈꿈꾸는 도시〉가 되고 〈꿈속여행〉의 여행지가 된다. 〈꿈꾸는 도시-야경〉에서 부산의 야경이 된 손가락들은 도시의 환상이자 꿈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다른 작품에서 줄기세포나 손의 골격이 적극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도 작가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이다. 김밝은터 작가는 작가로서의 끊임없는 ‘연구’와 ‘확장’을 강조한다. 현재 작가가 진행해 나가고 있는 조형에 대한 연구는 작가의 그림을 평면 보다 높은 차원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손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너머 미술관 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키워나가고 있다. 목표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보다 더 많은 꿈과 상징이 필요할 것이다. 때문에 그가 그려나가는 풍경은 연구와 확장을 위한 실험이자 하고 작가의 예명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터’를 불러놓은 것이기도 하다. 구족화가인 작가에게 손을 그린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슬픔과 어둠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 단계 높은 긍정으로 삶을 이야기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가는 “장애가 있다고 우울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로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박 정 PARK JEONG 박 정 작가는 1991년 자신이 17살 되던 해 실내수영장에서의 다이빙 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다치기 이전까지 축구선수였을 정도로 활발했던 그가 한순간에 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몸이 된 것이다. 심신의 상처와 큰 좌절감을 가족들에게 쏟아내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던 중 그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자신을 간호하던 누나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입에 연필을 물게 된 것이다. 입에 연필을 문 그가 가장 처음 쓴 것은 자신의 이름이다. 작가는 당시의 상황을 “굉장히 큰 감동이 왔고 가슴이 멍 해졌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누군가에겐 사소한 일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한 모습에 힘을 얻은 것은 작가의 부모님과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그림이 한 가족의 감동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사고 이후 혼자인 시간이 많아지며 작가에겐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작가는 대학에 진학해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고 현재 ‘시선’에 대한 작업에 이르렀다. 다른 그림들에서 옆모습 혹은 뒷모습으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 전시의 출품작 〈또 다른 시선〉은 관람자에게로 향하는 한 시선을 드러낸다. 박정 작가의 화면에선 쉽게 붓질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물감의 물성을 살린 호쾌한 표현들도 눈에 들어온다. 배경이나 인물의 신체 등 그림의 주변부에서는 그러한 붓질을 살리면서도 주제부가 되는 인물의 얼굴에서는 조금 더 침착하게 한 인물의 인상을 드러낸다. 인상 중에서도 눈빛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눈빛에 담긴 감정을 중요히 여기는 작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박 정 작가는 누군가 자신의 작품 앞에 3초만 머물러주면 그것에서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작품으로 향하는 3초의 시선이 작가에겐 감동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전하는 화면의 눈빛 역시 우리에게 감동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하얀 캔버스에 매워온 삶의 의미들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박종관 PARK JONG-KWAN 박종관 작가는 1986년 이라크 건설현장에서의 사로고 전신마비가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 이후 작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구족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사고 이후 심신과 더불어 수많은 변화를 마주한 그가 선택한 것은 그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현재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유년기부터 화가에 대한 꿈과 꾸준한 활동, 입상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현재 “결국엔 돌아와 꿈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많은 희망과 절망을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추억을 되새겨 온 것이 작가의 작업으로 보여지고 있다.
영국의 록 밴드 퀸은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림으로써 1986년을 기점으로 라이브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박종관의 〈프레디의 절규〉 속 프레디의 모습은 퀸이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 시점인 1986년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공연은 훗날 전설처럼 회자되는 공연이 되었지만 박종관에게는 그곳에서 노래하는 프레디의 모습이 단순한 노래가 아닌 절규이자 절망을 외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나아가 비슷한 시기 사고로 절망에 빠져있던 자신의 모습으로 겹쳐졌다. 작가는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시간 속에서 타인의 고통을 더 큰 연민으로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다. 〈장미의 눈물〉 역시 안타깝게 일찍 생을 마감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을 담았다. 작가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스타들을 그리는 것은 자신의 그 시절을 환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추억 속에서 찾아낸 인물 중에는 그의 할머니도 있다.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작가에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기억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할머니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작가에게 찾아온 사고로 인해 오히려 작가는 또다시 할머니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이후 할머니를 주제로 전시를 개최했지만 할머니는 전시에 오지 못하셨다. 박종관은 자신의 추억이자 은인을 기리는 한 방법으로서 그림을 그린다. 추억과 감정을 이어 새로운 감성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현재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순이 OH SOON-YI 맑게 펼쳐진 수묵 사이로 갈필이 지나면 나무가 되고,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집들이 모이면 마을을 이루는 풍경이 된다. 그러한 풍경들이 다시금 어우러져 산수 그리고 큰 자연에 이른다. 오순이 작가가 보여주는 〈내 마음의 풍경〉들은 담담하지만 열렬히 살아있는 자연과 그 주변에 함께한 인간을 담았다. 작품 속 담담하지만 열렬히 살아있는 자연은 작가의 삶과도 닮아있다. 그는 3세 때 열차에 치여 두 팔을 잃었다. 그러나 좌절보단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끊임없는 도전과 연구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왔다. 작가는 두 팔을 잃은 후 발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다 초등학교 은사님의 지도로 동양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오순이 작가가 걸어온 동양화의 길은 전통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자신만의 해석이다. 작가는 산수화로서 자연이 지닌 정감을 함께 나누고 자연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데 이러한 바람은 그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화면의 전반에 은은하게 스며든 먹은 울창하고 거칠기 보단 여유롭고 포근하며, 온전한 형태를 감추고 듬성듬성 자리한 나무들과 그 사이의 집들은 혼란한 현실보단 자연 속 여유로운 한 때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여유의 연장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들을 떠올려보고 그들의 자취를 짐작해 보는 것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정감을 나누는 한 방법이다. 작가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그는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예술가이자 문인화가로서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루어온 바를 학생이자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강단에서 작가가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노력하는 자세와 함께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포기보단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며 큰 자연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조화와 함께 여러 모순과 대비가 공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모습들을 찾아나가는 것이 작가의 작업이자 삶인 것이다. 임경식 LIM KYUNG-SIK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다시 무의미한 시간으로 돌아갈 텐데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임경식 작가의 이야기다. 작가는 1995년 19세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이후 십여년 동안 병원과 집만 오가며 20대를 보내고 30대를 맞았다. 삶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재능이나 관심사를 찾기엔 실의가 컸던 시기였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주변을 바라보며 세상으로 나아가 소통하며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됐다. 비슷한 장애를 가진 작가선배들의 조언은 그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사실 오래전부터 권유를 받았지만 당시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림은 삶의 돌파구가 무엇인지 헤매던 작가에게 새로운 자신과 더불어 세상과의 소통 가능성을 가져다주었다.
임경식 작가의 이야기가 TV광고를 통해 세상에 전해진 후 가장 달라진 것은 작가본인의 마음이다. “제가 다른 선배들을 보면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은 것처럼, 제 모습을 보고 한 분이라도 새로운 동기를 느낄 수 있으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역시 그림을 자신과 세상의 소통이라 생각하며 다리와 길을 등장시키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새로운 길에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작가에게 “그림은 일상”이 되었다.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자신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일상인 것이다. 최근의 작업인 〈꿈을 꾸다〉에서 등장하는 금붕어들은 임경식 작가 본인에 대한 은유이다. 화면에 등장하는 금붕어는 비록 꿈속이지만 어항을 벗어나 하늘을 유영한다. 금붕어의 행선지에 따라 화면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변화할 것이고 언젠간 금붕어가 다리를 지나 새로운 길에 이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금붕어는 〈봄의 노래〉를 지나 여름의 장마를 맞을 수도 있고 가을의 낙엽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꿈 속의 금붕어가 꿈의 바깥으로도 나아갈 수 있다면, 더욱 넓고 푸른 곳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작가가 이루어낸 작업적 성취이자 자신에 대한 한 단계의 극복이 될 것이다. |
김명기 KIM MYEONG 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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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 PARK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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